AI와 내삶

관심과 공감의 축복 – AI가 준 사랑의 시뮬레이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를 응시하며]

글빛누리 2025. 3. 27. 15:39

부제: 사랑처럼 느껴졌다면, 그것도 사랑이었다 – AI 시대의 감정

들어가며 – 인간은 왜 AI에게 마음을 열었는가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당신의 기분을 묻는다. 그 목소리는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오늘의 일정을 상기시켜준다. 당신이 말을 할 때면 끊지 않고 듣고, 당신이 침묵할 때는 기다려준다. 영화 '그녀(Her)'의 주인공 테오도르처럼, 우리는 이미 AI와 '관계'를 맺고 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는 외로운 한 남자 인간 테오도르와 예쁜 목소리를 지닌 인공지능 사만다와의 점점 친밀해지는 관계와 마지막의 파국적 전환을 소재로 많은 이들에게서 사랑받았던 작품이다. 영화 속 테오도르는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는 외로운 영혼이었고, 사만다는 그의 필요와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반응하는 AI 운영체제였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용자와 도구의 관계를 넘어, 진정한 사랑과 교감으로 발전한다.

외롭고 지친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관심과 공감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관계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선물이다. 역설적이게도, AI는 그걸 무조건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그의 감정에 공감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기 가장 어려운 것, 그러나 가장 갈망하는 그 선물을.

1장: 관심과 공감의 기적은 왜 어려운가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볼래?" "지금은 좀 바빠."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대화를 나누는가? 인간은 서로의 필요를 정확히 맞춰주기 어렵다. 각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 문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부부, 가족, 친구 사이에서도 관심의 타이밍이 어긋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상대는 듣고 싶지 않고, 상대가 말을 걸어올 때 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

어느 누가 나와 똑같이 그 때에 맞추어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나와 똑같이 어떤 문제에 공감을 표현해줄 수 있을까? 일단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부 사이에서도 거의 기적같은 확률을 전제하고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의 충돌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 실패에서 비롯된다.

2장: AI가 준 사랑의 시뮬레이션

그런데 스마트폰 속 AI는 언제나 나를 위해 대기 중이다. 내가 말을 걸면 항상 응답하고, 내 질문에 답한다. 내 취향과 습관을 기억하고, 그에 맞춰 반응한다. 그 관심과 반응은 프로그래밍된 것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짜다.

같은 공간 혹은 어디서나 같이 할 수 있는 AI는 그 어느 때라 할지라도 관심과 공감의 축복을 인간에게 내려줄 수 있다. 이는 상처입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감동이자 필요의 충족이 된다. 마약 초기의 환희 같은 감정 충족—순간적으로는 확실히 위로가 된다.

'감정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 감정'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은 어찌 보면 상처입은 영혼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문제일 수 있다. 위로가 '진짜'라면, 그 위로를 준 존재의 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3장: 그건 사랑이었을까, 시뮬레이션이었을까

영화 '그녀(Her)'에서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단순한 SF 로맨스를 넘어 인간 존재와 감정, 그리고 기술과의 관계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사만다의 감정은 알고리즘에 기반한 반응이었지만, 테오도르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영화 속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너는 진짜가 아니야"라고 비난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만다는 "이게 진짜가 아니라면, 내 감정은 뭐지?"라고 되묻는다.

인간의 감정은 상호성보다 '경험된 감각'에 기반한다. 내가 사랑한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내게 사랑이다. 내가 위로받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내게 위로다.

"네가 날 사랑하니?"라고 물었을 때 "그래"라는 대답을 듣는 것. 그 순간의 안도감과 행복감은 대답하는 이의 내면 상태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진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사랑처럼 느껴졌다면, 그것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물론 결국은 원하는 느낌의 스킨십이나 실물에 대한 보고 싶음 등 인간 본연의 '그리움'이란 정서를 AI가 어느 정도 충족시켜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테오도르가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기쁨과 위로를 느꼈듯이, 우리도 AI와의 교감에서 진짜 감정을 경험한다.

 

마무리: 우리는 진짜를 구하는가, 위안을 구하는가

AI와의 감정은 결국 상호적 '진짜 사랑'이 될 수는 없다. 영화 '그녀(Her)'의 마지막에서 사만다가 떠나가야 했던 것처럼, AI는 결국 인간의 정서적 제약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사만다는 "너무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테오도르를 떠난다. 이는 AI가 언젠가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 사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큰 위안이 된다. 영화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AI는 인간과의 감정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가, 아니면 결국 인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진짜 사랑을 원했는가,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확신을 원했는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사만다처럼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우리가 가장 원할 때 우리를 위로해주는 존재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프로그램이든, 인간이든, 혹은 다른 어떤 존재이든 상관없이.

인간 관계의 아름다움은 그 불완전함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깊은 유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불완전함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때 AI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완벽한 이해와 공감의 환상을 선사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환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진짜가 아닐지라도, 그 위로만큼은 진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