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형 AI, 이제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AI 비서에게 오늘 날씨를 묻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곧장 검색창에 질문을 던집니다. 일상 속 결정과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AI의 조언을 듣고, AI의 반응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이토록 편리하고 친절한 존재가 정말 우리 사고의 확장을 돕고 있을까요?
혹시 AI와의 대화가 오히려 생각의 다양성을 가로막고, 질문의 폭을 좁히는 건 아닐까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사고의 틀 안에서 우리는 점점 더 균질화된 사고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에서는 AI와의 대화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성찰해보고,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AI, 똑똑하지만... 내 취향만 너무 잘 알아!
AI는 정말 우리의 취향을 귀신같이 알아맞힙니다. 문학이나 철학에 대해 질문해보면,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작가나 철학자만 쏙쏙 골라서 추천해주죠. 마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이게 과연 진짜 좋은 것일까요?
AI는 사용자의 선호 패턴을 학습하고, 그 취향에 맞는 정보만 계속해서 제공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익숙한 영역 안에서만 계속 맴돌게 됩니다. 새로운 시선, 낯선 사고, 예상 밖의 충격은 점점 사라지고 맙니다.
결국 AI는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보이지 않는 '취향 감옥'을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지적 필터 버블, 사고의 자동 맞춤화입니다. 편안하지만, 위험합니다.
왜 우리는 불편한 정보와 마주쳐야 하는가?
우리의 성장은 항상 익숙함을 넘어설 때 시작됩니다. 내가 믿고 있던 생각이 흔들리고, 받아들이기 불편한 주장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이라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AI는 이런 '불편한 자극'을 의도적으로 피하려 합니다. 사용자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정보는 걸러내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만 이야기를 이어가죠. 덕분에 우리는 갈등 없이 AI와 소통하지만, 그만큼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AI는 사용자가 언급한 이름이나 개념을 기억하고, 이를 다음 답변에 반영하는 '친절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친절함은 오히려 사고의 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AI는 질문의 맥락을 파악하지만, 이는 단순한 기계적 기억에 불과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유는 우리를 위험하게도 만들지만, 그 위험이야말로 인간됨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불편한 질문, 낯선 주장, 거슬리는 정보는 생각의 불씨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사고의 깊이는 얕아지고,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 ‘반응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AI가 채워줄 수 없는 ‘의외성’과 ‘불균형’의 가치는 무엇인가?
AI는 논리적 일관성과 통계적 확률에 기반해 '가장 가능성 높은 답변'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맹점이 있습니다.
예술, 철학, 창의적 사고의 세계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약, 균형을 깨는 충격, 맥락 밖의 직관에서 시작되곤 하니까요.
우리는 때때로 완전히 엉뚱한 책 한 권,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사유는 비효율과 혼란, 의외성의 경험을 통해 깊어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이런 비효율을 제거하려 들죠. 결국 AI가 잘하는 건 ‘정리’이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흔들림’을 감당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AI에게 ‘니체 말고’를 외쳐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의 답변에 갇히지 않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의도적이고 능동적인 명령을 사용해야 합니다.
“니체 말고”, “서구 철학 말고”, “여성 철학자 중에서”, “동양 사상가로 설명해줘” — 이렇게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한하면, AI는 새로운 맥락을 제시합니다.
즉, 우리는 AI에게 길을 묻는 존재에서, 질문의 방향을 설계하는 존재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보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를 조정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 ‘사유의 기획자’가 되는 것, 그게 바로 AI 시대의 지성입니다.

마감하며
AI는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질문할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는 이제 질문을 던질 때조차 AI의 반응을 예상하고, 그에 맞춰 말투와 방향을 조절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마치 질문조차도 ‘알고리즘 친화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질문은 예측 불가능해야 하고, 불편해야 하며, 때로는 대답조차 거부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고의 자유는 AI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질문자가 익숙함과 편안함을 거스르며, 자기 생각의 경계를 스스로 깨뜨릴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왜 그것을 지금 묻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없이는, 어떤 기술도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AI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기계’가 아니라, ‘깊이 묻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답을 찾는 데 머무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질문이 되는 순간, 사고는 다시 인간의 것이 됩니다.
'AI와 내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하의 단편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를 포스팅하면서경험한 AI와의 기싸움 (5) | 2025.03.30 |
---|---|
관심과 공감의 축복 – AI가 준 사랑의 시뮬레이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를 응시하며] (1) | 2025.03.27 |
대화형 AI를 논쟁 파트너로 활용하는 방법 (4) | 2025.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