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될 뿐이다."
프롤로그: '서구' 이후, 새로운 시선의 출발점
19세기, 문명은 유럽의 이름으로 말해졌다. 문명과 야만을 가르며, 세계를 분류하고 규정하고 통제하는 말들.
그 시선은 식민지의 언어가 되었고, 지도 위의 색깔이 되었으며, 문학과 철학, 예술과 과학의 기준이 되었다.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은 그 중심을 무너뜨렸고,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문명'은 '자유'와 '시장'이라는 새로운 말로 갈아입고, 청바지와 록 음악, 코카콜라와 헐리우드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중심 없는 시대, 혹은 새로운 중심의 출현
이제 문명은 더 이상 하나의 중심으로 말해지지 않는다.
지도를 펼쳐도, 그 어디에도 문명의 이름이 명확히 적혀 있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파리를, 베를린을, 뉴욕을 '세계의 수도'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으며, AI와 대화하고 있다.
문명의 무게는 더 이상 수도나 국경 위에 있지 않다.
네트워크,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우리의 감각과 연결된 디지털 세계 속에 퍼져 있다.
"문명은 더 이상 지도 위에서 이동하지 않는다. 이제는 네트워크 위에서 재구성된다."
문명을 바꾸는 건, 기술이 아니라 시선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기술이 문명을 바꿨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다시 말해 문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문명을 '서구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져가는 선형적 진보'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고 충돌하고 조우하는 다중의 문명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감각과 코드, 플랫폼과 이미지를 통해 문명을 경험한다.
초연결성과 탈중심성
인터넷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정보가 흐르는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흐르던 정보와 문화가, 이제는 어디에서든 생성되고 어디로든 확산될 수 있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가 세계를 휩쓸고, 아프리카 음악이 유럽 차트를 석권하며, 중국의 앱이 미국 청소년 문화를 바꾸는 시대. 이것은 단순한 문화 교류가 아니라, 문명적 시선 자체의 재편이다.
다음 문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중국의 디지털 통제,
한국의 문화 파급력,
일본의 감성 기술,
동남아시아의 빠른 디지털 전환...
이제 문명은 경계의 개념이 아니라, 연결의 감각이 되었다.
우리는 유럽과 미국의 시선을 지나, 또 다른 시선을 배워야 할 때에 와 있다.
이제 우리는 '누가 문명을 말하는가'보다 '누가 문명을 응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 문명의 도구인가 지배자인가
PC와 인터넷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이제 인간의 감각과 사고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근대 문명의 토대를 만들었듯이,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문명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 기술은 문명의 진보인가, 혹은 새로운 지배의 도구인가?
-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 중심 문명의 끝을 의미하는가?
-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만드는 새로운 권력 구조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 시리즈는 서구 중심 문명이 끝난 시대,
AI와 디지털 기술, 그리고 아시아의 도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명 구도를 차례로 짚어보려 한다.
단순히 기술의 흐름이나 정치적 질서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문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어떤 시선으로 타자와 세계를 응시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 편 예고
2편 – 디지털 문명의 등장: PC와 인터넷이 바꿔놓은 인간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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