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망망대해에서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며 나의 숨겨진 꿈과 갈등을 드러내준다."
독서란 나에게 어떤 삶의 여정 속에 자리 잡아 왔는가?
나는 솔직히 독서를 많이 한 사람으로 분류되진 못한다..
아주 어렸을 때, 친구들 집 책꽂이에 당연히 꽂혀 있던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도 내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 대신 나는 길거리에서 뽑기를 하면 읽을 수 있었던 오래된 만화책을 길거리에 앉아 어두워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인근 고아원에서 표지도 없이 헤어진 세계 위인전 두 권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읽었던 만화책과 위인전은 세상을 알아가는 작은 창문이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놀이터였다.
고등학교 시절, 상하로 인쇄된 문고판 서적을 처음 접했고,
지금은 작가 이름도 가물가물한 『독일인의 사랑』을 마치 신학 교과서처럼 탐독하곤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나는 ‘책’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창비와 문지에서 발간한 작품들, 그리고 문고판 세계문학들이
그때의 나에게 문학적 사유의 창을 열어주었다.
특히 러시아 문학—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세계는,
그 사상의 깊이와 인물들의 격렬함, 역사와 자연의 거친 숨결로
내 청춘의 밤을 뒤흔들었다.
황석영, 조세희, 윤흥길, 이청준, 최인훈…
그들의 작품은 당대의 고통과 희망, 민중과 존재의 갈등을
날것 그대로 내 가슴에 던졌다.
당시의 책 세상은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을 판매했다는 이유만으로
연행될 수 있었던 엄혹한 세월.
황석영과 고은의 작품들은 일상 속에서 바라보는 못가진 자들의 애환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사적 자부심을 드러내어 주었고,
최인훈의 광장을 통해서
분단국가에서 살아가야 했던 젊은이들의 처절한 고뇌를 되새겼다.
‘난쏘공’이라 축약해서 불렸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 등 긴 제목이 서사가 되었던 그런 작품들을
나는 허겁지겁 먹어삼켰다.
문학은 단순한 글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발언이었고,
때론 시대에 맞서는 저항이었으며,
때론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고백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맹렬한 독서의 욕망은
내 삶의 한쪽 구석으로 물러났다.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가끔 헌책방에서
그 시절의 나를 빚어준 책들을 다시 만나며
잊었던 감정들을 더듬는다.
어떤 책은 여전히 나를 흔들고,
어떤 책은 낯선 얼굴로 말을 걸어온다.
어쩌면, 그것은 책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나’라는 독자가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블로그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인문학의 낡고도 새로운 비늘을
내 늙어가는 속피부에 한 점씩 덧입혀본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정보를 얻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어떤 문장에 멈추는지를 바라보는 일,
어떤 감정에 반응하는지를 지켜보는 일,
어떤 생각은 애써 외면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독서는 결국, 나를 읽는 일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관찰하는 일이다.
젊은 시절, 내가 읽었던 책들의 목록은
그 시대의 공기와 함께
내 지적 욕망의 지형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 세월을 살아낸 지금,
내가 다시 접하는 책은
유튜브와 SNS 같은 빠른 매체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고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는 나의 시선도, 기대도
그만큼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한 번—
책을 통해 나를 다시 만나려는 이 더듬거림이,
언젠가 새로운 나를 길어 올리는 여정이 되기를.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고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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